중국 회사채 시장에 이상이 감지된다. 기업 파산이 잇따르고 자금조달 비용 역시 높아지고 있다. 2018년 10월8일 블룸버그-바클레이스 인덱스에 따르면, 중국 달러 표시 회사채 가운데 미국 국채와의 금리차가 10%포인트 이상 벌어지는 게 15개였다. 다른 신흥국의 이런 회사채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브라질 회사채가 3개, 자메이카와 러시아가 2개씩으로 그 뒤를 이었다.
미국 국채와 금리차가 10%포인트 이상 벌어진 채권이라면 이미 정크본드다. 기업 상황이 엄중하지 않다면 이런 고수익 채권을 발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11개월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 에너지기업인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자회사가 발행한 채권은 결국 10월8일 밤 부도 처리됐다. 채권 규모가 1억5천만달러다. 원화로 자그마치 1800억원에 이르는 채권이 휴지가 된 것이다.
신흥국의 달러 표시 채권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돼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예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그 배경에는 달러 강세가 있다. 달러 강세 현상이 지속되는 한 달러 표시 채권의 지급불능(디폴트)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달러 향배는 여전히 신흥국과 그 기업들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달러 강세 후폭풍
이렇게 묻는 사람들도 있다. “달러가 강해지면 수출을 많이 하는 신흥국으로선 좋은 일이 아닌가?” ‘자국 통화 약세, 달러 강세’는 분명 수출 경쟁력 제고에 기여한다. 그러나 이는 한쪽만을 강조한 것이다. 달러 강세로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달러 부채 부담이 적은 나라 얘기다. 달러 표시 부채가 많을수록 강한 달러는 부채 상환을 어렵게 한다. 달러 환전에 더 많은 자국 통화가 들어갈 뿐 아니라 달러 조달 비용도 늘기 때문이다. 달러 강세로 자국 통화 가치가 20% 정도 절하됐다면, 동일한 액수의 달러 빚을 갚는 데 20%의 자국 통화가 더 필요하다. 절하폭이 클수록 달러를 구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이 점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몇조달러에 이르는 달러 표시 채권 만기가 돌아온다는 점에서 그렇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는 금리를 제로로 낮추고 세 차례 달러를 푸는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명분은 국제 금융시스템을 구하기 위해서였지만, 실제로는 미국 이익을 위해서였다. 그로 인해 두 가지 일이 벌어졌다.
미국 투자자는 수익에 굶주렸다. 쥐꼬리만 한 이자로는 만족할 수 없어 높은 이자를 주는 외국에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위험했지만 유혹은 달콤했다. 아르헨티나, 터키, 그리스까지 돈을 빌려줬다. 워낙 싼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기에 그만큼 투자 욕구도 컸다. 고금리 갈증으로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신흥국 정부와 기업은 이것을 기회로 인식했다. 귀한 달러를 얼마든지 값싸게 빌릴 수 있었다. 자국 금리보다 더 낮은 금리로 달러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해 싼 금리로 돈을 빌리고 자국 통화로 환전한 뒤 그 돈을 국내 은행에 예치해두기만 해도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의 저금리 기조에서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행복했다. 가만히 앉아 돈을 벌 수 있었다. 상부상조했다고 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국내 투자보다 훨씬 높은 고정소득을 얻었고, 외국 채무자는 싼 부채를 얻어 흥청망청 썼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윈윈 게임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윈윈 게임이 끝나간다. 2015년 12월 연준은 긴축을 시작했다. 미국 금리는 7년 만에 오르고 있다. 첫 번째 금리 인상 여파는 크지 않았다. 0.25%포인트 인상만으로 투자자들 행태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들이 해외 고수익 증권에서 손을 떼게 할 수 없었다. 금리는 계속 올랐다. 2018년 초 연준의 단기금리는 2%대로 올라섰고, 11월 초순 현재 2.5%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다. 미국 투자자들은 국내에서도 얼마든지 높은 수익률로 덜 위험한 채권을 살 수 있게 됐다. 미 국채를 사면 위험이 없다. 투자자들이 굳이 위험한 신흥국 채권과 통화, 주식에 돈을 묻어둘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환차손 위협
달러 강세가 낳는 또 하나의 문제는 환차손 위협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외국의 고수익 증권에 투자하는 ‘캐리트레이드’ 자금의 손실 가능성이 높아졌다. 빌린 통화가 절하(가치가 떨어짐)되고 투자한 국가의 통화가 절상되면 환차익을 본다. 반대로, 빌린 통화가 절상되고 투자한 국가의 통화가 절하되면 환차손을 입게 된다.
예를 들어 100만달러를 2%로 빌린 뒤 터키 리라로 환전해 터키 채권 2년물(수익률 8%)을 샀다면 투자한 당사자는 일단 6% 수익을 고정적으로 얻는다. 채권 수익률 8%에서 빌린 돈의 이자율 2%를 뺀 것이다. 그런데 채권 만기가 되어 달러가 리라에 대해 20% 절상됐다면 환차손이 발생한다. 채권을 파는 시점에 달러로 환전하면 80만달러가 돼버린다. 환율 변화로 20만달러를 손해 보는 것이다. 미국에서 달러를 빌려 캐리트레이드를 한다면, 달러가 다른 통화보다 약세를 보이고 연준이 금리를 계속 낮게 유지할 때 환차익을 볼 수 있다. 2008~2015년 이런 일이 실제 가능했고, 이때가 캐리트레이드 주체들에는 호시절이었다.
상황은 역전됐다. 달러 강세, 신흥국 통화 약세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게다가 연준의 긴축이 이어지며 금리가 오르고 있다. 돈을 빌려 캐리트레이드에 나섰던 헤지펀드, 대형 은행, 그림자금융(은행과 같은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는 거래)에 빨간불이 켜졌다. 갚아야 할 빚이 늘어나고 환차익이 아니라 환차손이 발생하고 있다. 캐리트레이드 주체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들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유력한 것이 투자 자본 회수다. 신흥국 자산시장에서 달러가 빠져나간다. 신흥국 통화 하락, 달러 유동성 고갈이 시작됐다.
급증한 달러 표시 채권
신흥국과 그 나라 기업은 앞으로 3년 동안 천문학적 규모의 달러 표시 채권을 갚아야 한다. 금융 솔루션 회사인 딜로직(Dealogic)에 따르면, 3년 안에 만기가 되는 신흥국 달러 표시 채권 규모가 약 3.25조달러(약 3667조6천억원)다. 90%가 회사채고, 나머지 10%가 국채다. 해마다 1조달러 안팎으로, 2018년 8919억달러, 2019년 1.1조달러, 2020년 1.2조달러 정도다.
채권 만기가 되면, 채무자는 일반적으로 새로 빚내 만기 부채를 갚는다. 현재와 같이 달러 유동성이 고갈되는 때가 문제다. 장기로 돈을 빌리기 쉽지 않으니 단기자금을 융통해 갚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단기 달러 금리는 극적으로 오르고 있다. 3개월 달러 리보 금리는 2018년 11월2일 2.59%를 넘었다. 2017년 1월엔 1% 수준이었다.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2배 이상 오른 것이다.
달러 강세는 현실이다. 이제 달러 빚을 갚으려면 더 많은 자국 돈이 필요하다. 이자를 더 준다 해도 달러를 구하는 게 만만치 않다. 달러 유동성 고갈로 신용이 낮은 국가와 기업은 더 이상 차입이 어렵다. 2020년까지 만기가 오는 신흥국 달러 표시 채권의 절반 이상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와 기업은 전체의 약 55%인 1.75조달러를 빌렸다. 브라질은 앞으로 3년 동안 1400억달러, 멕시코는 900억달러, 러시아는 1330억달러의 빚을 갚아야 한다. 이들 국가와 기업이 빚을 무리 없이 갚아나갈지 의문이다. 지금은 단기자금마저 융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앞으로 환율은 안빠지겠습니다
그러면 원화가 오히려 강해질 수 있는데, 이게 더 재앙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