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석유나 금 같은 원자재는 해당 원자재의 펀더멘탈을 추정하는게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평균적인 공급과 수요 추세에 더해 해당 원자재를 채굴하기 위해 이루어진 각 기업들의 투자 현황을 확인한다면 현시점에서 대강의 펀더멘틀을 추정하는게 가능합니다. 특히나, 원자재를 채굴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투자행위와, 그러한 투자로 인해 원자재가 채굴되어 시장에 풀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면 걸릴수록 시장참여자들은 현재 시점에 그 투자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미래의 공급예상에 대해 비교적 한 방향으로 몰아서 예측하고 대비하기 때문에 수년 뒤 대강의 가격전망은 잠정적이지만 합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석유 가격이 올라가면 여기저기 해양플랜트들이 돌아가고, 셰일가스를 개발하고, 심해유전도 돈을 들여 시추하는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그러한 투자증가가 몇년 후에는 공급과잉을 일으킬거라고 누구든 쉽게 예상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경향으로 시장 참여자의 다수의 동의로 인해 추정되는 미래가치를 펀더멘탈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합리적인 발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기차가 보편화되면 석유 수요가 줄고 대신 가스수요가 늘어날거라는 예측, 현재 셰일가스를 채굴하려는 투자가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는지, 미국이 석유를 수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향후 유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거라는 예측, 이런 것들은 분명 몇년 내의 유가동향에 예측가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때문에 향후 유가가 오르거나 내리는 것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게 아닙니다.
물론, 이건 장기전망이 그렇다는 거고, 갑작스레 전쟁이 터지거나, 산유국 몇군데에 금수조치가 내려지거나, 지금처럼 트럼프가 유가를 내리라고 하는 것 같은 돌발적이고 정치적인 요인들에 의해 단기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거나 내리는 것은 이런 펀더멘털로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런건 당연히 펀더멘탈이 아니라 일시적인 가격변동, 즉 모멘텀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겁니다.
그렇지만, 주식은 원자재와 다릅니다.
일단 공급을 늘리기 위해 몇년 동안 수조원씩 되는 투자를 감행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언제든 돈 주고 사면 되는게 주식입니다. 또 다른 점은 원자재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창출을 할 수 없지만 주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식은 기업의 지분을 대표하고, 기업은 영업활동을 해서 현금을 창출합니다. 그런 현금에서 일정부분 주주에게 배당을 해주기도 합니다. 또 다른 차이점은 보관과 유통을 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겁니다. 주식을 사서 홀드하는 데에는 유조선이 필요하지도, 막대한 부지의 보관창고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식의 펀더멘탈은 원자재에서 논하는 펀더멘탈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의 주식 가격이 높다거나, 계속 올라가고 있다거나, 그것이 펀더멘탈을 의미하는 건 아닐겁니다. 석유같은 원자재는 그렇게 가격이 높거나 올라가면 그제서야 투자를 시작해서 그 투자가 완료될 때 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많은 시장참여자들이 이러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전망에 합의를 이루도록 충분한 정보대칭성이 보장되지만, 주식은 단지 가격이 높거나 올라간다고 해서 그러한 가격정보 만으로는 충분한 시간을 거쳐 확고하고 투명하게 공유될 수 있는 정보대칭성을 만들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시장참여자들의 대다수가 상당한 시간동안 정보공개가 이루어져서 이로 인해 향후 동의된 전망을 형성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주가나 가격추세가 아니라, 해당 기업이 얼마나 이익을 내고 있으며, 그렇게 내는 이익을 얼마나 주주에게 배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배당성향이 미래에 어떤 전망이 있는지와 같은 기업현황과 전망에서 그러한 시장참여자의 합의된 전망을 도출할 수 있을겁니다. 현재의 가격이나, 추세, 그 가격을 형성하는데 기여하는 수요-공급간 균형은 펀더멘탈과 상관이 없을 수 밖에 없는겁니다.
그러므로, 주식의 펀더멘탈은 주가나 수급이 아닌 기업 자체의 미래전망과 경영진의 경영행태 및 성과, 주주친화정책 및 배당성향 등이 될 것입니다.
같은 반도체기업인 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주가가 궁극적으로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를 따져봐도 펀더멘탈이 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똑같이 자사주 매입을 해도 한 쪽은 그걸로 금융수익을 올리고, 다른 한 쪽은 주식소각을 합니다. 배당도 어떤 곳은 분기별로 배당을 해주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 자체의 원가절감능력이나 시장지배력 차이도 어쩌면 당연하게 펀더멘탈에 포함되어야 하는 요소입니다. 그런 것들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별 차이가 없다든지, 펀더멘털에 비해 주가가 더 크게 오르거나 떨어지는 주식이 있다면, 장기전망으로 볼 때에는 반드시, 그러한 펀더멘틀에 주가가 수렴하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업황 자체에 대한 전망이나 오너리스크도 이러한 펀더멘탈을 고민할 때 포함되어야 할 요소겠지요.
물론, 이런 펀더멘탈만으로 주가가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모멘텀이 중요하고, 이런 모멘텀을 형성하는 테마나 유행, 수급이나 챠트 같은 것들도 단기 및 중기 투자를 하는데에는 필수적일겁니다. 그럼에도 펀더멘탈 예측을 중심 투자논리로 설정하고 가치투자를 지향하는 전략은 지금처럼 수급이 불안정하고 전반적인 시황이 하락추세에 막 들어섰을 때 고민해야 하는게 줄어들고, 시시각각 가격이 변할 때마다 멘탈에 흔들림 없이 편하게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겁니다.
사실, 인터넷을 쳐보면 주식의 펀더멘탈이나 모멘텀에 대해 갖가지 다양한 해석들이 있고, 그걸 다 보면 뭐가 맞는지 혼동하기 쉽습니다. 저 또한, 정확이 뭐가 펀더멘털이고, 모멘텀인지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는데, 원자재 시장에서 펀더멘탈과 모멘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다 보니, 주식의 펀더멘탈이나 모멘텀에 대해서도 좀 더 명확하고 일관성있게 정의할 수 있겠더라구요.
이렇게 펀더멘탈과 모멘텀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면서 굉장히 유익했던 게 조지 소로스의 재귀이론(reflexivity theory)입니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그 수요와 공급이 가격을 시시각각 결정하는게 아니라, 현상으로 드러나는 가격의 수준과 추세로 인해 시장참여자들의 심리가 형성되어 이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대응하게 된다는 통찰은 객관적이고 절대적 진실이라는 개념을 거부하는 칼 포퍼의 사상을 잇는 소로스의 위대함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저도 언제 한번 이 재귀이론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공부를 해봐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글 잘 쓰시는거 같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