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모이는 인문학 모임에서 이번에는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원래 골랐던 영화는 로맹가리를 다룬 ‘새벽의 약속’이었는데 상영관이 거의 없어 그날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을 보게 되었습니다. 문화가 있는 수요일, 5000원이라 그런지 영화관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가슴에 아픔으로 기억되어 온 IMF. 그 때는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깊이 있게 해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니 보는 내내 가슴이 쓰렸 왔습니다.
부실금융권은 정치권과 손을 잡고 채권과 어음으로 사업을 키우는 기업들과 거품 부풀리기에 일조합니다. 사태를 주시하던 사람들은 엄청난 위기가 몰려올 것을 예견하는데 각각 대처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입니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인 시현은 사건을 해결해 보고자 온갖 노력을 하지만 금융권에 있던 정학은 위기를 기회로 바라보고 투자를 시작합니다. 재정국 차관은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며 그 와중에 작은 그릇공장 사장이었던 갑수는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라보는 투자가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행동인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을 것을 알고, 보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모습에 치가 떨렸습니다. 결국 시간이 흐른 뒤 아픔은 서서히 치료가 되겠지만 그와 동시에 당시의 상황을 잊어 가는 우리들은 또 다른 비상사태를 맞게 될지 모릅니다. 역사는 반복되니까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다는 말을 나누었습니다. 흥밋거리로 보는 영화는 아니고, 특별한 스토리가 있지도 않으며,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긴박하게 재현하고, 각각의 입장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상황을 잘 그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