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 갈 때마다 이중섭 박물관과 생가를 방문하곤 한다. 그의 대표작인 ‘소’도 좋지만 각종 종이들에 아기자기하게 그려 놓은 가족 그림들이 좋다. 그의 편지들을 모은 책을 오래전 읽고 아내와 자녀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영화와 동명의 책을 빌려왔다 못 읽고 반납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가 있는 걸 보고 반가운 마음에 영화를 틀었다.
영화를 찍을 당시 우리나라 나이로 93세였던 마사코(남덕)은 아직도 고운 얼굴을 하고 계셨다. 젊었을 때 얼마나 곱고 우아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두 아들을 홀로 키우며 재혼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그녀의 마음속에 아마도 오래 전에 죽은 이중섭 화가가 늘 함께했을 것 같다.
일본에서 그림을 배우다 만난 사이인 이들은 원산에서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키우던 중 한국전쟁으로 집이 폭격을 당하면서 부산 피난길에 오른다. 따뜻한 곳을 찾아 떠난 제주에서 1년 동안 살았던 그들은 다시 부산에 갔으나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급기야 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을 친정으로 보낸다. 잠깐의 이별을 기대했을 것이나 일본과의 수교 단절로 이들은 만날 수가 없게 된다. 겨우 얻은 일본에서의 1주일은 어쩌면 이후 중섭에게 더 큰 아쉬움의 시간을 보내게 했을지도 모른다. 외로움과 굶주림으로 짧은 생을 마쳐야 했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고, 혼자 두 아들을 잘 길러낸 마사코가 대단해 보였다. 두 사람의 애틋했던 사랑을 생각하며 나를 반성하고 돌아보기도 했다. 오랜만에 보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는데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동명의 책도 다시 빌려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