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재즈와 클래식에 관한 글을 써보려고 했습니다. 재즈를 잘 모르기에 재즈와 관련있는 클래식위주로 하려다가 김연아의 2010 밴쿠버 올림픽 프리스케이팅 음악을 뽑아봤습니다.
김연아 2010 프리스케이팅 음악: 거쉰(George Gershwin) 피아노 협주곡
언제 봐도 멋진 스케이팅입니다. 제 기억에 김연아의 연기 다음에 아사다 마오가 나오는데 마오는 라흐마니노프의 Prelude C# Minor를 주제음악으로 들고 나옵니다.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19세에 작곡한 솔로피아노곡으로 그에게 엄청난 대중의 인기를 안겨 준 곡인데 아사다 마오는 이 곡의 관현악버전으로 연기를 합니다.
그 당시 어떤 외국인 아나운서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아사다 마오의 귀여운? 스타일에 라흐마니노프의 이 심각한 곡은 미스매치로 연기와 음악이 따로 논다고 한 것 같습니다. 김연아에 비해 팔, 다리가 짧고 상대적으로 머리가 커보여 (일본 만화 여주인공 캐릭터?) 성숙미보다는 귀엽고 발랄한 연기가 더 적합한데 왜 그런 발랄하지 못한 음악을 골랐나 하는 얘기를 그때 어디선가 들은 것 같습니다.
이쯤 쓰다보니 재즈얘기는 사라지고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 얘기가 주가 된 것 같아 그의 작품 몇개를 올릴까 합니다.
Kissin의 Prelude C sharp minor (2014년 연주인데 키신 이제 많이 늙었네요.)
다음은 로맨티스트의 세련됨과는 거리가 먼 라흐마니노프의 본인의 투박하고 묵직한 선굵은 터치의 직설적인 연주입니다. 자기 음악을 자기가 이렇게 해석하겠다는데 연주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둥 유튜브에 말이 많네요. (1919년 레코딩이라는데 음질은 믿을 수 없을만큼 좋네요.)
어쨌든 이 곡 하나로 19세인 1892년에 전 러시아 및 세계의 유명인사가 된 라흐마니노프는 승승장구하다가 1897년에 교향곡 1번을 초연하게 됩니다. 라흐마니노프가 쓴 첫번째 교향곡인 만큼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초연은 대 실패로 끝납니다. 이 때 지휘자가 Glazunov인데 글라주노프는 라흐마니노프보다 12살이 위인 또다른 천재음악가로 이미 그 당시 이미 러시아음악의 거장으로 여겨졌습니다. 글라주노프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수제자였으며,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자기의 또다른 제자인 (늦은 나이에 작곡공부를 시작했고 별 능력도 없어보이는) 스트라빈스키를 제쳐두고 글라주노프야말로 러시아음악의 미래를 책임질 뛰어난 작곡가라고 공언하였다고 합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1908년에 죽고 스트라빈스키의 불새(Firebird)가 1910년, 그 유명한 봄의제전(The Rite of Spring)이 1913년에 나왔으니,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지금 이 시대로 살아 돌아온다면 글라주노프는 도대체 어디로가고 스트라빈스키가 현대음악의 the ultimate 창시자 대접을 받고 있으니 어안이 벙벙할 겁니다.
라흐마니노프의 1번교향곡은 마더니즘으로 가보겠다는 라흐마니노프의 진보적인 실험이었지만 글라주노프의 무성의한 지휘 (그가 술에 취한 채로 지휘했다는 루머도 있습니다.) 탓에 초연을 망친 후에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을 못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게 됩니다. 이후 정신과 의사의 상담과 최면치료를 통하여 1901년에 피아노협주곡 2번을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둡니다. 이 때부터 그의 커리어는 새로운 음악의 실험보다는 대중이 좋아하는 (우리가 흔히 Late Romantic Style이라 부르는) 음악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게됩니다. 사실 이것은 이미 70여년간 지속되어 온, 그래서 레드오션이 되버린 낭만파음악을 그대로 이어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개척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방향이었지만, 결국 라흐마니노프는 전통적인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데 성공합니다. (그 당시에는 유명했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진 작곡가들이 꽤나 많습니다만 결국 라흐마니노프는 지금도 대중의 든든한 지지를 받고 있죠.)
특히 1907년에 발표한 2번 교향곡은 평론가들 사이에는 해도해도 너무한다라는 평을 얻기도 하는데, 이는 1악장부터 4악장까지 쿼드러플 로맨틱으로 일관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스타일이, 평론가들이 보기에는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시대착오적인 작곡기법으로 보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2번교향곡을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공중파에서 자주 듣지 못했는데 요새는 라디오에서 자주 틀어주기도 합니다. 3악장이 유명하고 팝송(또는 대중가요) 음악으로도 많이 쓰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1악장도 절대 놓칠수 없는 악장입니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우울한 (그러나 절대 구슬프지 않은) 불안하고 위태로운 멜랑코리한 느낌의 1악장이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연주 내내 클라리넷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엄습하는 불안감사이에서 멜랑콜리한 감정을 부추킵니다. 1악장을 들을 때면 침엽수로 빽빽한 눈덮힌 시베리아의 깜깜한 암흑속에서 어두컴컴하게 다가오는 일출의 순간이 떠오릅니다.
2번교향곡은 앙드레 프레빈의 연주가 명연으로 꼽히는데 최근에도 좋은 연주가 많으며, 특히 유튜브에서 연주자들의 각 악기별 연주를 듣고 볼 수 있는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키타옌코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2번 전곡
또한 너무 유명해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3악장도 첨부합니다.
후배작곡가였던 스트라빈스키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평하였다 합니다.
"Grandiose Film Music"
분명 칭찬은 아닐겁니다. 그러나 웅장한 영화음악이면 어떻습니까. 이제는 불멸의 클래식이 되버린 음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