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라 읽기 시작했던 책인데 읽다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사회 격동기를 살았던 민초들과 지식인의 이야기가 너무 실감나게 그려져 있었고, 암울했던 세상을 살았지만 그의 적나라하고도 유머러스한 풍자가 기가 막혔다.
레디메이드 인생은 교육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으로 신분을 높이기 위해 너나할 것 없이 다들 배움에 열을 올렸음에도 정작 일자리가 없어 고민하는 이야기이다.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사회에 맞는 기성품으로 전락해가는 교육받은 사람들은 비단 그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남들 다 가는 대학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가지 않는 청년들도 생겨난다. 어쩌면 오늘날의 교육 또한 사회구성원을 위한 기성품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치숙이라는 소설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한 학생이 어리석은 삼촌의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없이 드러낸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편승해 호위호식하기 위해 그들에게 빌붙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생각을 가진 주인공은 배울 만큼 배우고 나름 사회운동을 한 삼촌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비판한다.
논 이야기는 민초들의 처절한 아픔이 그려져 있다. 강점기에 땅을 팔고 일제가 항복한 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국가는 그들에게 돌려주지 않고 돈 많은 친일세력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 또한 당시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민족의 죄인은 채만식 자신을 투영시킨 글인 듯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경찰이 무서워 일제에 협조하라는 글을 썼던 그는 아마 해방 이후 시골로 가서 숨어 지내고 싶었을 것이다. 글을 쓰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그와 같이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붓을 꺾거나. 그들에게 저항했거나 초연했던 작가들이 후대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사실이나 채만식을 비롯해 일제에 편승한 작가들에게도 할 말은 있는 것이다.
--- 본문 내용 ---
- 소문이 퍼질까 저어하여, 경찰의 형벌이 두려워, 이 나를 믿고서 와 안기어 고민을 호소하는 젊은이들의 진심에 대하여 한 가지로 진심이지 못하는 나의 비겁함, 그 용렬스러움. 나는 나 자신이 야속하고 또한 슬펐다. (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