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을 말씀해 주세요. 이 책은 자신의 삶과 연결될 수 있을까요?
2. 읽으면서 의미 있던 구절을 이유와 함께 말씀해 주세요.
3. 스피노자는 중세의 시각과 다르게 욕망을 긍정합니다. 내 존재를 확장시킬 수 있는 욕망은 무엇인가요?
4. 좁은 집에 있었지만 넓은 생각이 흘렀던 스피노자의 삶은 몇 가지 점에서 저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감명을 준 인물을 말씀해 주세요.
5. 스피노자는 신에 대한, 국가에 대한, 행복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도전하면서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위기를 느끼게 했습니다. 스피노자의 사상이 현대 사회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가질 수 있을까요?
+ 책을 읽으면서 (당시에) 느낌있었던 몇 가지 구절을 정리한 것입니다. 자유롭게 이야기 해봐요!
이를 위해 그가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떻게 미신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또한 노예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사람들은 어째서 쉽게 정념에 사로잡히는가? 그리고 어떻게 신에 대한 참된 인식에 이를 수 있는가? 나아가 어째서 인간의 최고 기쁨은 신을 인식하는 데 있는 것인가? p.88
여기서 우리는 ‘10미터’와 ‘10킬로그램’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월한지 말할 수 없다. 그것들은 단지 동일한 것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길이와 무게)으로 말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간의 정신과 신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우월한지에 대해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동일한 존재가 서로 다른 방식(사유와 연장)으로 표현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p.106
스피노자는 우리 자신에 대해 자유롭다고 여기는 믿음이 도리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다른 외적 원인, 즉 타자에 의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이에 대한 무지가 도리어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혼란스러운 삶에 빠지도록 이끈다. 이를테면 우리가 분노의 감정을 갖게 되었을 때 어째서 분노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알아야만 이를 다스릴 수 있다. p.137-138
그러면 인간이 갖는 자유란 어떤 것일까? 여기서 스피노자는 우리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별할 것을 제안한다. 자신이 어떤 것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139
따라서 그는 선악 개념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선이란 우리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시키는 것이며, 악은 우리의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거나 억제시키는 것이다. p.158
스피노자는 양태들이 어떤 방식으로 마주치느냐가 선악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보았다. 양태들 간의 마주침에서 양태들이 결합하게 된다면 그것은 ‘선’하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서로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마주친다면 그것은 ‘악’하다고 할 것이다. p.159-160
기존의 도덕은 선악에 대해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서든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보편타당한 원리로 여겨왔다. 따라서 그것은 당위이자 명령이었고, 결코 위반해서는 안 될 법칙이었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그러한 생각이 다만 원인에 대한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 그럼으로써 도덕은 인간의 판단 능력을 박탈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p.161-162
그러므로 코나투스는 자기 능력이 미치는 한에서 최대한 자기 존재를 ‘확장시키려는’ 노력이기도 한 것이다. p.179-180
이처럼 스피노자에게 욕망은 기존의 평가처럼 더 이상 부정적이거나 사악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욕망은 자기 능력의 표현이자 그 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욕망을 없애버리거나 억압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을 무기력하고 굴종적인 존재로 만들 뿐이다. p.186
인간은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욕망에 따라 느끼고 활동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욕망을 창조적이고 능동적으로 표현하도록 하는 것에 있지, 이성으로 욕망을 없애거나 억누르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게 스피노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p.187
정서의 조절과 억제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을 나는 예속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정서에 복종하는 인간은 자신의 권리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권리 아래 있으며, 흔히 더 좋은 것을 보기는 하지만 더 나쁜 것을 따르도록 강제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운명의 힘 안에 있기 때문이다. 《에티카》 4부 서문
우선, 예속의 문제는 좋은 마주침과 나쁜 마주침을 판단하는 능력의 상실과 관련된다. 자신에게 무엇이 유익하며 해로운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 필경 그는 운의 지배 아래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p.201
여기서 적합한 관념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원인의 관념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본성에 따라 지속적으로 기쁨을 주는 관계를 확보하도록 해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능력을 확장시키고 능동적으로 기쁨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속에서 자유로 나아가는 데 관건이 되는 것은 적합한 관념을 갖는 것이다. p.202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부터 설명되는 관념을 갖는 데 있다. 자신이 실제로 그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관념을 직접 소유해야 한다. 그래서 이는 단순히 ‘앎’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는 것이다. p.202-203
자유로운 인간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행하지만, 예속된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행하며 원치 않는 일을 행하게 된다. 《에티카》 4부 정리 66 보충
매번 대상을 회피하기보다는 그 대상과 ‘새로운’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그 대상과 기쁨을 나누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좀더 적극적인 방안이 된다. 달리 말하면, 그 대상에 대해 더 보편적인 공통 개념을 형성해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p.210-211
정신은 더 적은 현재의 선을 더 큰 미래의 선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포기하고, 현재에서는 선이지만 미래의 어떤 악의 원인이 되는 것은 결코 욕구하지 않을 것이다. 《에티카》 4부 정리 62 주석
스피노자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사회란 우정과 사랑으로 하나로 일치하며 저마다의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자발적인 결사체를 의미했다. p.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