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BA - Kisses of Fire (Live at BBC, 1979)
아바(ABBA)가 39년만에 다시 재결합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나는 더위를 피해 대림역 근처 콩국수집에 있었습니다.
뜬금포 재결합이라니, 이 노친네들이 돈이 없나 가오가 없나. 반가움보다 이제 와서 왜? 불가사의하게 다가왔습니다.
멤버 4명의 평균 연령이 무려 일흔네살. 아무리 백년장수시대라고 해도 좀 과하단 생각이 들죠.
콩국수가 떡지도록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 친구들한테 이 기막힌 소식을 들었냐 톡도 보내고(근데 다들 심드렁)
핸드폰으로 진짜인지 정보도 찾아보고 하다 보니 이들 멤버 4명의 평균 재산이 2천억이란 기사까지 봤습니다.
슾샬 디브 기함이 몇 대인지 세보기도 겁나는 액수를 갖고도 다시 무대 위에 서기를 바라는 욕망이란 대체....!
아바(ABBA). 격동의 8, 90년대를 통과한 세대에겐 잊을 수 없는 이름이지만 지금 내 아들세대에겐 삼국유사 느낌
아바의 히트곡을 일일이 세는 건 부질없는 짓입니다. 모든 노래가 복음처럼 아름다웠으니까요. Dancing Queen,
The Winner Takes It All, Mamma Mia, Waterloo 등등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떠오릅니다. 아, 그래도 Chiquitita는
따로 언급해주는 게 좋겠어요. 이 노래를 부를 때 앙네타 펠트스코그의 잔뜩 찡그린 미간이 엄청 매력적이거든요.
Kisses of Fire가 수록된 6번째 정규 앨범 <Voulez-Vous>의 커버. 지금 보면 앙네타(사진 우측)의 표정이 왠지 슬퍼보이는
하지만 Chiquitita, I Have a Dream 같은 세기의 명곡이 수록된 이 앨범에서 정작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들의 노래는
Kisses of Fire 였습니다. 좀 의외였죠. 물론 이 노래는 그들의 오리지널리티라 할 수 있는 디스코의 혈통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곡이지만, 전반적인 앨범의 완성도를 살펴볼 때 깍두기 느낌이 강한 곡이었거든요.
이 앨범이 발매된 것은 1979년. 그룹 내부에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균열이 다가오기 시작하던 시점이기도 합니다.
갈등의 중심은 앙네타와 비에른 부부였죠. 앨범 발표 후 스위스, 영국 등을 오가며 투어에 나설 당시 그들은 이미
이혼을 결심한 후였습니다. 자녀 양육에 관한 이해가 엇갈린 게 이유였죠.
Kisses of Fire를 열창중인 아바의 멤버들. 좌로부터 애니 프리드, 앙네타, 그리고 비에른
더 솔직히 말하면, 사실 나는 이 노래의 존재조차 몰랐습니다. 비음 섞어가며 Chiquitita만 콩글리쉬로 흥얼거릴 뿐.
그런데 어떤 기회로 아바의 광팬을 자처하는 여자와 술을 한 잔 할 기회가 있었는데 리퀘스트가 가능한 지하 술집에서
그녀가 이 노래를 들어보라며 신청하는 겁니다. 아직 반이나 남은 피쳐는 아랑곳없이 데낄라 두 잔과 함께.
날렵한 음표가 내 머리 위로 우박처럼 쏟아지는 느낌. 그게 Kisses of Fire 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단추구멍 벌어지듯
커지는 내 눈을 지켜보던 여자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싱긋 웃었습니다. 실없는 농담에 그녀가 몸을 들썩일 때마다
풍기는 샛노란 치자향, 손님이라곤 우리밖에 없는 어둡고 탁한 공간을 내내 휘감던 디스코 선율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일본여행 갔을 때 교토의 레코드숍을 이잡듯 뒤진 끝에 발견한 Kisses of Fire가 수록된 아바의 일본판 베스트 앨범과
그녀가 애타게 찾아 헤매던 Renaissance의 Novella 앨범을 건넬 때까지만이라도 인연이 이어졌으면 좋았으련만.
일흔 넘은 노친네들의 재결합에 별 상상을 다해봅니다. 그러나 추억은 추억일 뿐. 눈 뜨면 세상은 여전히 정글입니다.
추석연휴 자알~ 보내세요~^^
푼짱님 글이 참 감성 넘치고 추억 돋게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추억 돋는 아바의 멋진 노래 들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