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D
포칼 엘레지아를 처음 빌렸을 때는 음악 감상부터 했고, 이틀째에 처음으로 넷플릭스 영화 감상을 해보았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4와 젠하이저 HDVD800을 옵티컬 연결해서 스테레오 재생하는 방식입니다. 머리와 귀의 물리적인 감촉이 매우 편합니다. 이어패드 두께가 20mm라서 귓바퀴가 넉넉하게 들어가고 은근히 통풍도 됩니다. 소리도 대단히 잘 맞습니다. 깨끗하면서도 살짝 샤프한 고음이 생생한 효과음을 전달하며 귀 아래쪽으로 깔리는 초저음이 마치 서브 우퍼 같습니다. 저음의 양이 많아서 쿵쿵거리는 게 아니라 울림의 규모가 크다는 뜻입니다. 넓은 공간과 입체감의 표현으로 다채널 스피커를 사용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 후 주말 동안 영화를 3편 더 감상했고, 레이싱 게임도 몇 시간이나 했는데 머리와 귀가 여전히 편안해서 놀랐습니다.
결국 이 헤드폰으로 넷플릭스 빈지 와칭(시리즈를 쌓아두고 계속해서 감상하기)을 하게 됐고, 소리 감상문 작성을 시작할 때는 번인(Burn-in)이 50시간 넘게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음악을 틀고 방치하는 방법이 아니라 비디오 게임과 영화 사운드를 듣다가 헤드폰 번인을 완료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 정도로 착용감과 소리가 모두 편안한 헤드폰입니다.
*휴대용 기기에도 그대로 매칭되는 범용성
포칼 엘레지아의 드라이버는 어지간한 이어폰 수준으로 감도가 높습니다. (105dB) 예를 들어서 소니 NW-WM1A와 3.5mm 언밸런스 연결을 하고 하이 게인으로 맞췄을 때 볼륨 40~50으로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소리가 작게 녹음된 음반이나 DSD 음반은 60~70까지 올려서 감상했고요. 이 헤드폰은 대부분의 휴대용 기기와 직접 연결해서 쓸 수 있습니다. 혹시 이어폰용 DAP와 휴대용 헤드폰 앰프를 보유하고 있다면 그대로 엘레지아의 소스 기기로 쓰면 됩니다. 아이패드의 헤드폰잭에 끼워서 들어도 깔끔한 소리가 나옵니다. LG V20에는 바로 연결하면 뭔가 허술한 느낌이지만 헤드폰 케이블을 분리해서 먼저 V20에 끼운 다음 헤드폰을 결합하는 방법으로 외부 음향 기기 모드를 켜면 제법 만족스러운 결과가 됩니다. 오디오퀘스트 드래곤플라이 같은 스틱형 USB DAC 제품에서도 좋은 소리가 나올 것입니다. 특히 코드 모조와 엘레지아는 아주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습니다. 이 감상문에서 설명할 엘레지아의 온갖 좋은 특징들이 코드 모조에서 그대로 살아납니다.
*소스에 1,000만원을 들여도 잠재력이 남아있다
소리 해상도가 매우 높아서 음악 파일 품질과 소스 기기 품질을 모두 타는 편입니다. 감도가 매우 높아서 소출력 휴대용 기기에서도 쉽게 구동할 수 있으나 질감이 거친 소스를 그대로 드러내는 헤드폰이라서... 엘레지아의 진가를 발견하려면 제대로 세팅된 거치형 헤드파이 시스템이 필요하겠습니다. 또한 거치형 헤드폰 앰프의 든든한 힘이 들어가면 엘레지아의 저음 울림과 질감이 향상됩니다. 이 물건을 오랫동안 빌렸기에 다른 앰프를 리뷰할 때에도 들고 가서 연결하곤 했는데요. 골드문트 텔로스 헤드폰 앰프 3와 페즈 오디오 오메가 루피(Fezz Audio Omega Lupi)를 리뷰하면서 엘레지아를 감상할 때와 집에서 젠하이저 HDVD800, Aune S7으로 감상할 때의 소리 품질 차이가 무척 컸습니다. 소스 쪽에 1,000만원을 들여도 계속 잠재력이 드러날 정도로 소리를 깨끗하게 전달하는 헤드폰입니다. 또한 앰프의 성능과 음색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게 해줘서 프로페셔널 오디오 헤드폰으로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소리의 세밀한 분리, 방대한 정보량
고해상도 사운드이며 소리를 세밀하게 나누는 분리 능력이 굉장합니다. 마치 포스텍스 TH900처럼 소떼가 몰려오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수많은 악기가 동시에 연주될 때의 휘몰아치는 에너지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포근한 성향의 저음과 자극이 강하지 않도록 조율된 고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버의 소리 해상도가 하도 높아서 청각으로 쏟아지는 정보의 양이 실로 방대합니다. 연결하는 DAC나 앰프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지만 포칼 엘레지아는 고음 악기들이 연주될 때 귀가 시원해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오래 듣기 편하도록 튜닝된 사운드
높은 중음 영역을 조금 낮춰서 청각 자극을 줄인 소리로 들립니다. 대충 찍어 보면 3~4kHz 영역을 줄여 놓은 듯 한데요. 그 외에는 고.중.저음의 균형이 잘 맞춰져 있으며 딥(Dip)이나 피크(Peak)도 없습니다. 단, 플랫 사운드는 아닙니다. 듣기 좋은 소리를 내도록 고음과 저음이 약간 강조된 형태이며 대충 그려본다면 완만한 V 사운드라고 하겠습니다. 포칼의 홈 오디오용 스피커 소리를 들어봤다면 친숙하게 느껴질 법한 음색입니다. 청각 자극을 줄이기 위한 튜닝과는 별개로 중음은 오히려 조금 튀어나온 느낌이 듭니다. 보컬과 현악기 음이 더 앞쪽으로 나와서 가깝게 느껴지고, 낮은 중음과 저음이 강조되어 있어서 선이 두텁게 묘사됩니다.
*일리어보다 밝고 클리어보다 어두운 고음
포칼 클리어처럼 샤프함이 바로 느껴지는 정도는 아니지만 엘레지아의 고음에도 살짝 밝은 기운이 있습니다. 포칼 일리어, 클리어, 유토피아 모두 밝은 음색인데 엘레지아도 그렇습니다. (*일리어도 케이블을 다른 것으로 바꾸면 밝은 음색이 느껴질 것임) 제가 듣기에 엘레지아의 고음은 일리어보다 조금 밝고 클리어보다는 조금 어둡습니다. 7~10kHz 영역에 강조된 지점이 여러 개 있는 듯 합니다. 선이 가늘고 가벼운 인상을 주는 고음이며 예리하고 정밀하게 정돈되는 느낌이 체감 해상도(?)를 더욱 높게 만듭니다. 이 특성은 듣는 사람의 취향 못지 않게 청각 수준에 따른 호불호가 있겠습니다. 고음을 잘 듣는 젊은 연령의 유저는 상당히 샤프한 느낌을 받을 것이고, 50~60대를 넘긴 시니어 유저에게는 알맞게 선명한 고음이 될 것입니다. 엘레지아의 고음은 드럼의 하이햇 심벌즈 소리를 명확히 강조하는 편입니다.
*예쁘고 부드러운 소리의 기준점
예쁘고 부드러워서 오래 듣기에 좋은 소리! 포칼 엘레지아는 그러한 소리의 기준점을 제시합니다. 예쁘다는 것은 고음이 화사하다는 뜻이고, 부드럽다는 것은 중.저음의 압력이 강하지 않아서 머리의 부담이 적다는 뜻입니다. 저음의 펀치는 든든하면서도 고막을 때리지 않으며 마치 포근한 공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포칼의 라우드 스피커와 헤드폰 모두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온화한 여성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온화한 성격의 여성을 떠올린다면 일리어를 꼽겠습니다. 엘레지아는 일리어의 온화함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고음에서 밝고 샤프한 인상을 주지만 이 헤드폰의 소리는 청각을 조금도 공격하지 않는 매우 친화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기본적으로는 건조한 음색
연결하는 앰프에 따라서 수준의 차이는 있으나, 음색이 조금 건조한 편입니다. 혹시 고음이 촉촉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엘레지아의 소리가 그런 것이 아니라 감상 중인 음반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다른 헤드폰으로 들을 때 가려져 있던 음악 속의 촉촉함이 엘레지아의 고해상도로 인해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이 헤드폰의 소리는 응답 속도가 빠른 편이며 왜곡률도 매우 낮아서 불필요한 잔향을 만들지 않습니다. 바이닐 레코드 음반과 진공관 앰프의 끈적한 느낌은 깨끗이 잊어주시기 바랍니다. 술에 비유한다면 어떤 종류든 간에 '드라이' 라벨이 붙은 술입니다. 본래의 맛에 충실한 깔끔함이라 하겠습니다. 포칼 엘레지아를 진공관 앰프에 연결해도 여전히 예쁘고 부드럽고 편안한 소리가 나오지만, 포칼 헤드폰들은 근본적으로 디지털 오디오와 트랜지스터 앰프에 맞춰졌다고 생각합니다.
*밀폐형에서도 변하지 않는 공간의 묘사
엘레지아는 밀폐형 헤드폰임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버의 구조와 튜닝이 원래 라우드 스피커에 가깝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포칼의 M-Shape Dome과 링 모양의 자석은 반칙 수준으로 공간감에 유리한 기술입니다. 헤드폰 하우징을 밀폐되도록 만들어도 드라이버 속 진동판의 후면이 뻥 뚫려 있어서 공간 확장 효과가 살아납니다. 제가 포칼 헤드폰을 ‘공간 헤드폰’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엘레지아는 밀폐형 헤드폰 본연의 소음 차단과 누음 방지를 해주면서도 오픈형 헤드폰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공간감을 제공합니다. 이 느낌을 리스트로 뽑을 수도 있습니다.
1) 드넓은 공간 묘사
2) 넓게 펼쳐지는 수평선
3) 귀 아래쪽으로 낮게 깔리는 초저음
4) 저음 강조가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웅장한 느낌
5) 이어컵 안쪽 전체가 골고루 울리면서 물리적인 울림 효과가 있음
6) 주파수 응답 형태가 입체감을 내도록 되어 있음
그래서 이 헤드폰을 영화 감상에 그토록 많이 사용했던 모양입니다.
*즐거움을 증폭하는 올라운더
포칼 엘레지아가 지니는 또 하나의 강점은 ‘즐거움을 증폭하는 올라운더(All-rounder)’라는 것입니다. 음색 특징이 없고 평탄한 소리여서 어떤 종류의 음악이든 다 어울리지만 뭘 들어도 심심한 올라운더 헤드폰이 아닙니다. 정밀하고 깨끗하며 균형 잡힌 소리로 스튜디오 모니터링 헤드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청각에 자극을 주지 않는 선에서 더 달콤하고 시원한 고음과 푹신하고 포근한 중.저음을 묘사하여 음악적 쾌감도 확보합니다. 또한 수많은 악기의 소리를 고스란히 분리해서 전달하는 성능과 밀폐형의 한계를 벗어나는 넓은 공간감으로 소편성부터 대편성 오케스트라 연주까지 모두 커버합니다. 드라이버의 주파수 응답 형태 뿐만 아니라 드라이버와 하우징의 물리적 구조 또한 공간감 형성에 맞춰졌습니다. 그런데 드라이버의 소리 해상도까지 월등히 높으니 어떤 음악이든 즐겁게 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에 연결해서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을 들어도, 고가의 헤드파이 시스템에 연결해서 오케스트라나 빅 밴드의 연주를 들어도 각각의 감동을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
*제품 요약 : 일리어 같은 중.저음과 클리어 같은 고음을 가진 밀폐형 포칼 헤드폰. 포칼에서 유토피아, 클리어, 일리어를 만들면서 가장 다루기 쉬운 올라운더 헤드폰의 노하우를 쌓았고 그 결과물이 엘레지아인 듯 하다. 굉장한 수준의 소리 해상도 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착용감도 대단히 만족스러워서 오디오 애호가의 진정한 생활용 헤드폰이 될 수 있겠다. 대형 헤드폰이지만 깔끔한 생김새와 짧은 케이블 덕분에 외출용 헤드폰으로 쓸 수도 있다. 포칼 특유의 밝은 음색이 맞지 않거나 애초부터 큰 헤드폰을 머리에 쓰는 게 싫다면 모르겠으나, 본인의 기준에서는 최상급의 밀폐형 헤드폰이라고 생각 중.
*이 리뷰는 오디오갤러리의 고료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좋은 제품을 찾아서 직접 검증, 분석한 후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제가 원하는 대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점은 글 속에서 직접 판단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