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m.huffpost.com/kr/entry/9782642#cb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백정각시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단오놀이를 하는데 구경꾼 속에서 백정이 딸 하나를 잡아낸 기라요. 한사 결단 달아날라는 거를, 아 그러씨 장정 몇이 덤비는 데야,치마가 찢기 달아나고 속곳이 벗겨지고,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고놈의 가시나 몸매도 좋고 얼굴도 이삐게 잘 생깄더마'
"볼 만했겄네"
"그 이삔 가시나를 엎어뜨리놓고 장정들이 번갈아서 올라타고 이랴! 이놈의 소가 와 안가노!함시로 엉덩이를 철벅철벅 때리는 기라요.뿐이겄소?목에다 새끼줄을 걸고 네 발로 기게 하고 구경꾼 앞을 돌아댕기는데,그 에미가 소개기를 가져와서 겨우 풀리났지마는 좀 안된 생각도 들고,"
"안되기는 머가 안됐단 말이오?백정은 사람이 아닌께,그 놈들을 오냐오냐 하고 내버려두었다가는 칼 들고 소만 잡겄소? 사람도 잡을라 들 긴데 옴작달삭 못하게 콱 기를 지이놔야지."
즉 백정각시놀이는 백정 집 여자들이 눈에 띄면 그야말로 짐승처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못된 풍습이었다. 이 일을 당한 여자 여럿이 목숨을 끊었다고 할 정도로 야만적인 횡포였다.
치마를 벗기고 올라타는 놀이…'백정 각시 놀음'
http://mnews.sbs.co.kr/news/endPage.do?newsId=N1003216868
<백정각시놀음>
.....백정의 아내와 딸이 마을행사등에 구경나와 있는게 보이면 끌어내어 재갈을 물리고 치마를 벗긴 뒤 소처럼 올라타고 끌고다니며 고기를 내어줘야 풀어주곤 했는데 이걸 백정각시놀음이라 했다.(백정 여자는 저고리 끝에 검은 표시를 해야 했고 사람들은 그걸로 누가 백정인지 구분했다.)
일제 초의 실화로 딸의 소학교 운동회를 보러갔던 어머니가 딸앞에서 백정각시놀음을 당한다. 딸이 보는 앞에서 입에 재갈이 물려지고 남자들이 올라타 온갖 모욕을 줬던거다. 결국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자살을 하고 만다.
국가보훈처 사적관리센터
http://sajeok.i815.or.kr/i815/m7/page//?qs1=&qs2=&qs3=���평사&mobile=yes&id=50
읽기자료 3번의 4에 내용
④ 백정에 대한 법적․사회적 차별은 일제시대까지 지속되었다. 1911년 일제가 한국인의 체격과 체질을 조사하는 데 일반인들이 거부하자 백정 남녀를 강제로 동원했다. 일제시대 신문 기사 중 학교 운동회에서 ‘백정각시 타고 달리기’라는 색다른 경주를 실시하면서 저고리 깃에 검은 천을 단 백정 각시를 찾아내어 소처럼 엎드려 기게 하여 치욕을 겪은 백정 여성이 자살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도 백정 호적에는 도한이라고 쓰거나 붉은 점을 찍어 일반인과 구분하였다. 일본 메이지(明治)대를 졸업한 장지필은 조선총독부에 취직하려고 했으나, 호적 등본에 '도한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고는 형평 운동에 뛰어들었다. 백정 자제가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거부하는 일들도 발생하였다.
백정 각시 타기의 진실 여부 논쟁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221009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total&no=11077668
========================================
조선시대 백정이 천대받는 직업이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
타 커뮤니티에 올라온글보고 충격받아 사실인지 포털에서 검색해봤는데 아마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보이네요.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는 ‘백정각시놀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단오놀이를 하는데 구경꾼 속에서 백정이 딸 하나를 잡아낸 기라요. 한사 결단 달아날라는 거를, 아 그러씨 장정 몇이 덤비는 데야,치마가 찢기 달아나고 속곳이 벗겨지고,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고놈의 가시나 몸매도 좋고 얼굴도 이삐게 잘 생깄더마'
"볼 만했겄네"
"그 이삔 가시나를 엎어뜨리놓고 장정들이 번갈아서 올라타고 이랴! 이놈의 소가 와 안가노!함시로 엉덩이를 철벅철벅 때리는 기라요.뿐이겄소?목에다 새끼줄을 걸고 네 발로 기게 하고 구경꾼 앞을 돌아댕기는데,그 에미가 소개기를 가져와서 겨우 풀리났지마는 좀 안된 생각도 들고,"
"안되기는 머가 안됐단 말이오?백정은 사람이 아닌께,그 놈들을 오냐오냐 하고 내버려두었다가는 칼 들고 소만 잡겄소? 사람도 잡을라 들 긴데 옴작달삭 못하게 콱 기를 지이놔야지."
즉 백정각시놀이는 백정 집 여자들이 눈에 띄면 그야말로 짐승처럼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못된 풍습이었다. 이 일을 당한 여자 여럿이 목숨을 끊었다고 할 정도로 야만적인 횡포였다.
치마를 벗기고 올라타는 놀이…'백정 각시 놀음'
http://mnews.sbs.co.kr/news/endPage.do?newsId=N1003216868
<백정각시놀음>
.....백정의 아내와 딸이 마을행사등에 구경나와 있는게 보이면 끌어내어 재갈을 물리고 치마를 벗긴 뒤 소처럼 올라타고 끌고다니며 고기를 내어줘야 풀어주곤 했는데 이걸 백정각시놀음이라 했다.(백정 여자는 저고리 끝에 검은 표시를 해야 했고 사람들은 그걸로 누가 백정인지 구분했다.)
일제 초의 실화로 딸의 소학교 운동회를 보러갔던 어머니가 딸앞에서 백정각시놀음을 당한다. 딸이 보는 앞에서 입에 재갈이 물려지고 남자들이 올라타 온갖 모욕을 줬던거다. 결국 어머니는 집에 돌아와 자살을 하고 만다.
국가보훈처 사적관리센터
http://sajeok.i815.or.kr/i815/m7/page//?qs1=&qs2=&qs3=���평사&mobile=yes&id=50
읽기자료 3번의 4에 내용
④ 백정에 대한 법적․사회적 차별은 일제시대까지 지속되었다. 1911년 일제가 한국인의 체격과 체질을 조사하는 데 일반인들이 거부하자 백정 남녀를 강제로 동원했다. 일제시대 신문 기사 중 학교 운동회에서 ‘백정각시 타고 달리기’라는 색다른 경주를 실시하면서 저고리 깃에 검은 천을 단 백정 각시를 찾아내어 소처럼 엎드려 기게 하여 치욕을 겪은 백정 여성이 자살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도 백정 호적에는 도한이라고 쓰거나 붉은 점을 찍어 일반인과 구분하였다. 일본 메이지(明治)대를 졸업한 장지필은 조선총독부에 취직하려고 했으나, 호적 등본에 '도한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고는 형평 운동에 뛰어들었다. 백정 자제가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거부하는 일들도 발생하였다.
백정 각시 타기의 진실 여부 논쟁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221009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total&no=11077668
========================================
조선시대 백정이 천대받는 직업이었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
타 커뮤니티에 올라온글보고 충격받아 사실인지 포털에서 검색해봤는데 아마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보이네요.
from CV
이 링크기사보면 형평사운동이 대해 자세히 설명해놨더군요.백정신분해방운동인 형평사운동을 전개했던 강상호님도 이이제이같은 프로에서 한번 다뤘으면 좋겟습니다.충분히 역사적 위인이라 할만한 분인데 민족내부의 치부문제라서 그런지 쉬쉬되는것 같네요.미국같으면 화폐도안에 들어갔을건데..
"예천읍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며
그 사건을 사회와 다른 사회단체에 알린 것이 '예천청년회'라는 단체라고 되어 있네요
그런데 화면 하단의 각주부분을 잘 보시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예천청년회의 규정에 의하면 회장은 일정액의 세금을 낸 자라야 하고 면장·경찰서장·판사·국민학교 교장과 같은 일제 부역인사들을 고문으로 선임하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예천청년회는 사실상 부유한 일제 부역자들의 친목단체였던 것이다(『조선일보』 1925년 8월 30일 「醴泉靑年會員 諸君에게」)"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쉽게말해, 예천청년회라는 단체가 친일단체라는 것인데...
언론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것도 아닌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하필 친일단체에서 여기저기 알리며 미개한 일을 바로잡겠다고 하며 자기들 명성을 퍼트렸다는 것은 굉장히 미심쩍은 내용이라고 생각되네요"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total&no=11077668
본문글 마지막 캡쳐사진에 보면 오른쪽 하단이 경상남도 교육청이 찍혀있습니다.
백정에 대한 광범위한 차별사례가 한번도 나온적이 없다는게 이상하죠
일제시대에 작성한 소설을 보고 전통풍습이라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신분제사회 아니었나요...?
흠...
from CV
흠...
from CV
계급이란 용어는 그당시 용어가 아닙니다...
유사한 단어일수는 있겠지만...
당연하니 안하니 하는 것은 지금 현재 님의 판단이죠...
그당시는 그런 판단이 통하는 사회도 아니구요...
흠...
일제에 부역한 이들이 그랬고 좌익척결이란 이름으로 무고한 국민들이 죽어 나갔던 이승만 시절이 그랬고 정권유지를 위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던 박정희 시절이 그랬죠. 그래서 그땐 시대가 그랬으니 당연한거였나요? 신분제면 저와같은 일이 당연한건가요? 그 시대엔 신분제라 당연해서요?
from CV
신분제사회니 신분에따른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었다...
그것에 대해 지금 시각으로 판단하는것은 님자유일지 모르지만 그당시 사람들에게 그것에 대한 판단 시각은 다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말이 이해가 안된다면 더이상 말씀드릴 생각이없군요...그리고, 조선시대 얘기하는데
왜 다른시절얘기를 끌어들이죠...?
신분제사회얘기하는데...
흠...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 하는 어르신들에게 당시 그땐 그게 맞아보였을지 모르지만 틀린거란 얘길 하면 이렇게 말씀들을 하지죠. 네가 그때 살아봤어? 우린 다 그때 살아봐서 아는거야! 당시 기억도 못하는 네가 뭘안다고..ㅉㅉ 이러시죠.
역사적 평가라는게있고 당시 그랬다고 하지만 홋날 재 해석할 수 있고 당시 당연했던일도 잘못된거면 훗날 잘못되었다고 지적 되어야 합니다.
from CV
이해못하시니 그만합니다...
더이상 말하지않겠습니다...
흠...
from CV
사람을 사람이라고 대하지 않던게 그리 오래된 게 아닌가봐요.
중세 농노들의 삶도 그렇고 ....
(초야권을 영주에게 바친다는걸 세계사에서 중학교 때 보고 뭐 이런 ㄱ같은 놈들이...)
이런 얘기들 보면 그래도 현 시기에 태어난 건 참 다행이라는...
돈 줬는데 이래도 되는거 아니냐?
http://egloos.zum.com/hyukjunseo/v/3543542
백정 각시 타기의 진실 여부 논쟁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bestofbest&no=221009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total&no=11077668
1910년경 일제시대에 무슨 운동회에요
from CV
본문글 마지막 캡쳐사진에 보면 오른쪽 하단이 경상남도 교육청이 찍혀있습니다. 교고영역3 193페이지라고..
교과서인걸로 추정되는데요?
이상각의 조선팔천에도 거론되는 얘기입니다. 일제가 꾸민 얘기라면 관련 자료가 있을겁니다. 찾아보세요.
그게 아님 그냥 아몰랑 빼애애애액~~~!!! 으로 볼 수 밖에 없어요.
from CV
백정에 대한 광범위한 차별사례가 한번도 나온적이 없다는게 이상하죠
일제시대에 작성한 소설을 보고 전통풍습이라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전 조선왕조실록을 몇번이나 다독했고
왕들에 대한 각종 추잡한 기록도 봤는데
백정에 대한 그런 놀이는 안적혀 있더군요
그동안 없엇던 풍습이 일제시대에 급하게 생겨서 소설에 등장 했나 보네요
from CV
일제에 의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더 강하네요
http://m.huffpost.com/kr/entry/9782642#cb
일본 경찰 또한 형평사의 적이었다. 진주경찰서장은 “일본에도 이런 천민집단이 존재하며 평민 대접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 중에 성공한 자도 없다. 그러니 농청 (형평사에 반대하는 농민 조직)이 간섭하지 않고 형평사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내가 형평사를 해산하겠다.”
최근 자료가 없다? 에 대한 반박이 2002년과 1993년에 언급된 자료를 근거라고 제시 하고 있습니다.
[제시 :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total&no=11077668]
일제 날조가 아니라는 근거 자료에 대해서는 조선말 혹은 최소한 일제 당시 자료를 말하는거지
90년대 2000년대 자료는 일제 날조의 영향을 받아 나올 수 있는 시기입니다.
고려장 날조 소설이 언제 유행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죠..
실제 저런 놀이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만약 저런 놀이 풍습이 횡횡할 정도였다라고 하면 국내 역사 자료에서 충분히 발견되어야 하는데
다른 역사학적 사료나 근거로 제시된 내용 없이 사실로 보여진다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시기적으로라도 조선말 혹은 구한말 일제치하에 기록된 자료로 제시된게 없다는거죠..
그렇다면 최소한 '백정 각시 놀음'이라는 악습이 실존했다 하더라도 추측 할 수 있는 범위가 극히 일부 사례이거나
역사적 사료에 언급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로 추측 하는게 더 맞지 않냐는겁니다.
특히 조선시대의 경우 과거 다른 시대보다도 왕실, 국정, 백성의 삶 등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고 다양하게 보존되고 유지되고있는 시대인데.. 저런 놀이가 횡횡할 정도면 언급이 안될 수가 없거든요..
링크에서도 가장 가까운 근거로 삼을 수 있는게 이상각 - 조선팔천 이라는 책 중 내용입니다.
여기서조차 구한말 조선 남부 그것도 경북 예천에 한정하여 노동위안회 라는 자리에서 벌어지곤 햇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럼 노동위안회가 무엇이냐..
바로 일제 치하 당시 노동조합의 활동중 한가지로 해당 내용은 [일제 하 노동 운동사/저자: 김경일] 이라는 책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https://books.google.co.kr/books?id=1HxLuh5vZy8C&pg=PA445&dq=%EB%85%B8%EB%8F%99%EC%9C%84%EC%95%88%ED%9A%8C&hl=ko&sa=X&ved=0ahUKEwi0scrk797OAhWENpQKHa8nBN4Q6AEIHjAA#v=onepage&q=%EB%85%B8%EB%8F%99%EC%9C%84%EC%95%88%ED%9A%8C&f=false
여기서 위안회는 당시 노동조합 위원들의 결속과 친목을 다지기 위한 일종의 이벤트이며,
일제 치하 당시 노동조합 위원을 할 인물들이 일반적인 백성 및 조선인 서민 계층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렇듯 조선시대의 백정에 대한 천대시와 차별에 대해서는 분명 사실로 보여지나
'백정 각시 타기'놀이가 일제 치하에 있었다는 사료는 있으나 이것이 순수하게 조선의 악습인지
일제 날조 혹은 일제 치하에 생겨난 현상인지에 대해서는 확신 할 수 없으나 나온 근거만으로
일제 날조가 아닌 조선의 악습이었던걸로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습니다.
인권수업자료 교과영역3 193페이지라고 경상남도교육청 직인이 박혀있는 캡쳐를 보니 안믿을수가 없더라구요.
그 자료에 언급된게 이상각, <조선팔천>이라고 되어있지 않습니까.
백정에 대한 광범위한 차별사례가 한번도 나온적이 없다는게 이상하죠
일제시대에 작성한 소설을 보고 전통풍습이라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일제 미화 의도를 담은 내용이 교과서에 실릴뻔도 했었구요.. 불과 국정교과서 논란이 일어난지 몇년 지나지도 않은 나라입니다.
어떤 근거로 교육청 교과자료를 그렇게까지 신용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최소한 현사학계에서 인정받는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철저히 교차검증한후 편찬한"결과물입니다.
그리고 계속 주장하시는 그 [인권수업자료 교과영역 3의 193페이지]에 언급된 내용에도
경남 예천지역 한정에 노동조합의 위원들이 노동위안회라는 이벤트에서 벌린 사건에 대한것으로 한정짓고 있는데다가
저 단체가 무슨 단체이며 노동위안회가 어떤 행사인지 자료까지 조사해서 보여드렸는데
뭐 다른 근거가 아니라 그냥 교과선데 믿어야지 하는 식으로 주장하시면 어떻게합니까.
교과서 내용은 언제든 바뀔수 있는 자료입니다.
교과서에서 고려장 이야기도 어릴때 나왔는데 이제와선 일본놈들이 외곡한거죠.
백정의 딸이 다니는 소학교 운동회에서 그런 치욕을 당하는 사회라면 애당초 백정의 딸이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닐 수도 없을텐데요.
저런 풍습이 있다면 백정의 딸과 아내는 공공장소에 나타날 리가 없고 저런 일을 당하는 백정이 일반 사람들을 그냥 뒀을리도 없죠.
또라이들은 어디에나 있으니 어느 또라이가 저지를 수야 있는 일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걸 즐겼다고 하는건 그냥 당시 사람들을 싸잡아 모욕하려는 것 밖에는 안됩니다.
한날당이 하던거 상상하시면 될 듯 하네요.
#CLiOS
http://sajeok.i815.or.kr/i815/m7/page//?qs1=&qs2=&qs3=������사&mobile=yes&id=50
읽기자료 3번의 4에 내용
④ 백정에 대한 법적․사회적 차별은 일제시대까지 지속되었다. 1911년 일제가 한국인의 체격과 체질을 조사하는 데 일반인들이 거부하자 백정 남녀를 강제로 동원했다. 일제시대 신문 기사 중 학교 운동회에서 ‘백정각시 타고 달리기’라는 색다른 경주를 실시하면서 저고리 깃에 검은 천을 단 백정 각시를 찾아내어 소처럼 엎드려 기게 하여 치욕을 겪은 백정 여성이 자살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도 백정 호적에는 도한이라고 쓰거나 붉은 점을 찍어 일반인과 구분하였다. 일본 메이지(明治)대를 졸업한 장지필은 조선총독부에 취직하려고 했으나, 호적 등본에 '도한이라고 기록된 것을 보고는 형평 운동에 뛰어들었다. 백정 자제가 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거부하는 일들도 발생하였다.
교과서 원본자료 찾음
나머지 사람들은 생각과 추상, 입으로만 아니라고 하네..
에휴, 그냥 말을 마세요..
기록 덕후였던 조선에서 이런 풍습이 횡행했다면, 그게 기록이 안 되었을리가 없죠.
같은 근거를 약간씩 변형해서 마치 참고자료가 많은 것처럼 하시는데, 결론은 저 딱 두개죠.
일제에 의해 날조된 역사로 봅니다.
그리고, 조선 말기 백정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큰 기와집에 살며, 경제적으로 무척 부유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덕분에 가문이 무너진 양반 중에도 자기 스스로 백정 일을 하는 사람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